[인턴]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_ 정규성 인턴

인턴
작성자
jwleecenter
작성일
2015-10-19 15:24
ksJang_CGM11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인턴을 마치며


 중학교 2학년 때 인도에서 3주 동안 의료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 일이라 그때의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러나 끔찍하게 더러웠던 슬럼가와 진찰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던 많은 빈민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진찰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그 옆에서 콧물을 훔치며 열심히 약봉지를 접고 있었던 15살의 저는 그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그런 동경을 구체화 시켜주는 귀한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농아인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수화동아리를 통해서 농아인들을 알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언어인 수화와 그들의 삶에 조금씩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 외에는 나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곁에서 직접 경험한 농아인 사회는 단순히 신체적인 장애뿐만 아니라 독특한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또 다른 나라의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분들과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단편적으로나마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전혀 글로벌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정말 글로벌 했던 경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귀중한 경험을 함께해준 농아인 가족들과 귀중한 경험을 함께해준 농아인 가족들과

농아인들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만난 대부분의 농아인은 가난하고 아프고 소외된 분들이었습니다.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사회적 편견만으로도 힘들 텐데, 통역사가 없으면 병원에 갈 수 없어 홀로 아팠고, 일터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해 가난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와의 의사소통도 그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려움을 보며 그 분들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동아리 친구들과 농아인 자녀교육, 수화교육 및 통역, 독거노인 돕기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열심히 뛰어 다녔습니다.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 또한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의 노력이나 보람과는 별개로 그들의 삶은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과 사회가 나의 생각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무력감이 들었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죽어야겠다 결심했다가 매주 찾아오는 제가 생각나서 그 마음을 돌이켰다는 독거노인 아저씨, 자신들의 자녀를 가르쳐주어 너무 고맙다며 작은 것 하나라도 손에 쥐어 주시려는 아주머니, 그리고 수화통역을 하는 나를 흐뭇한 미소로 바라봐주시는 농아인 분들을 볼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무력감 때문에 남은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한 만큼 더 치열하고 깊게 고민에 마주해야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또한 지금처럼 혼자 아등바등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의 한계 속에서 ‘함께’ 라는 가치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post1 해외 의료봉사활동 현장에서 주민들과

제게 영향을 끼쳤던 두 번째 경험은 해외 의료봉사였습니다. 지금까지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에 단기 의료봉사를 참여하고 간접적으로 그런 활동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그런 단기적인 보건의료 활동의 한계를 자주 느끼곤 했었습니다. 선한 의도와 적지 않은 자원을 가지고 여러 단체들이 보건의료 활동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이런 도움이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필요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목적을 위해 보건의료 프로그램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단체들이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일들을 두고도 단체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자원들이 낭비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게 과연 최선인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들은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본과 2학년 때, 그런 궁금함과 함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늦바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머시쉽(Mercy Ships)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시쉽은 1978년부터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민간 병원선을 이용하여 아프리카를 포함한 개발도상국에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또한 정부와 지역기관 그리고 다른 NGO들과 협력하여 한 나라의 보건역량을 강화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갔을 때 그 배에는 40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곳은 또 하나의 작은 세계였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펼치는 다양한 생각, 생활방식, 전통, 문화, 가치관 등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토록 넓은 세상 속에서 지금까지 나는 너무 좁은 시야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ost2 머시십(Mercy Ships)에서 친구들, 게리박사와

그 곳에서 저는 한 주의 반을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환자 선별 작업을 하거나 현지병원, 교도소, 농아인 학교 같은 곳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저를 포함한 머시쉽의 봉사자들은 하나의 팀으로 움직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수술로 치료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현지의 보건의료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에 현지인들을 최대한 참여시키고 그들의 역량을 향상시켜 그 변화가 지속 가능 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런 노력이 쌓여 서아프리카 지역의 보건의료에 지속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머시쉽은 과거에도 지금도 서아프리카 지역의 많은 나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는 단체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머시쉽의 의료원장이자 30년 동안 그곳에서 헌신해온 게리 박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온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세상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더 많은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머시쉽의 많은 봉사자들을 보면서 저는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국제보건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이 시작된 것도 그 때였습니다. 머시쉽이 진행하는 다양한 의료 서비스와 지역개발사업들을 경험하면서, 제가 공부하고 있는 의학이라는 학문이 실제로 더 넓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의 역할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그 의료인들이 각자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분들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서로 협력하여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조연이 국제보건의료 분야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제가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post4

인턴 기간동안 참여한 CGM의 프로그램에서



 

그런 기대의 연장선에서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이하 CGM)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CGM은 서울대학교와 관련 단체들의 국제보건의료 역량을 한 곳에 모아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었습니다. 정말 쉽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CGM의 역할은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CGM에서 여러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또한 Academia나 ACC와 같은 다양한 행사와 보건의료 현황 보고서 및 사업계획서 작성에 참여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CGM에서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과 함께 있을 때면 10년 뒤, 2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보곤 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에 대한 깊은 배려와 이해를 지닌 따뜻한 이웃으로. 수치로 환산되는 결과적 효율성과 영향력보다는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사람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의료인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단체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국제보건의료 활동가로 성장할 시간들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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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 정규성 (jgs5950@gmail.com)
사진 및 정리 : 유인선 (insunssi.cgm@a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