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11-29
    해외 의료진 역량 강화, 한국 의료기술의 현지화가 중요

    해외 의료진 역량 강화, 한국 의료기술의 현지화가 중요

    11월 12일부터 19일까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대학교 부속 블랙라이온병원에서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와 서울대학교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이 함께 한 ‘에티오피아 심장수술 역량강화사업’이 진행됐다. 이번 사업에는 선천성 심장병 어린이 수술 및 현지 의료진 교육을 위해 흉부외과의, 마취과의, 소아심장내과의, 심폐기사, 수술실 및 중환자실 간호사 등 의료진 15명이 수술팀을 꾸려 참여했다. 일주일 간 9건의 소아심장수술에서 수술의 처음과 끝을 책임진 송인경 서울대학교병원 소아마취통증의학과 교수를 만나 아디스아바바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들었다.

    prof song

    현지 의료진에게 의료기기 작동법을 설명하는 송인경 교수

     

    -일주일 간 ‘에티오피아 심장수술 역량강화사업’에 참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는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에티오피아에 가기 전에는 주변에서 다들 힘들 거라고만 이야기하셨고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있을 때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문제가 해결되는 걸 보면서 수술팀에 참여한 의료진 개개인의 열정과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해외 의료지원활동에서 현지인들과의 협력도 중요하지만, 우리 측의 팀 구성과 의지가 무척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지요. 현지 병원의 사정이 저로서는 한 번도 처해보지 않은 환경이었고, 한국의 병원에서는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열악했는데 동료들과 같이 머리를 맞대고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만족감을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한국에서처럼 수술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의약품을 갖춰서 갈 수는 없었을 텐데, 준비 과정과 현지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마취과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서 너무나 당연히 사용하는 종류의 마약제나 진정제, 혈관수축제 등의 약제가 현지에 없었어요. 특히 마약제나 진정제는 해외 반입이 되지 않아 현지에서 구해야하는데, 한국에서 사용하던 약이 없으니 현지에 있는 약만으로 마취를 해야 했죠. 특히나 심장수술이다 보니 혈압을 올리거나 낮추는 약제가 정말 중요한데 그런 것을 충분히 조달할 수 없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그 외에도 소아는 피부가 약해서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수술을 하면 멍이 들고 상처가 잘 생겨요. 그래서 푹신한 스폰지로 받쳐주거나 보호대를 설치해야하고, 몸에 물기가 하나도 없도록 거즈로 닦아줘야 하죠. 그러나 여기에 필요한 도구가 부족하거나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박스를 잘라서 보호대를 만들고, 수술포와 거즈도 아껴서 써야했죠. 부족한 물품을 중환자실과 계속 소통하면서 개수를 조절하며 사용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이동용 산소가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어요. 수술 후에 이송중일 때나 청색증이 있는 아이들에게는 산소가 필수적인데, 그냥 공기를 마시면서 가야하는 거죠. 그러다 산소포화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엄청 걱정이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아무 문제없이 마취가 잘 됐고, 수술도 잘 된걸 보면서 현지의 상황에 맞춰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어차피 의료지원이나 봉사활동으로 가는 곳에는 언제나 의약품과 장비를 전부 가져갈 수 없고 충분치 않을 테니 현지 상황에 맞춰서 적용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현지 의료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우리의 방식을 현지 사정에 맞게 변형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송인경 교수님을 비롯해서 한국 의료진들은 수술을 하고 환자를 돌보는 동시에 현지 의료진들에게 하나라도 더 설명해주려고 일주일 내내 부단히 애를 쓰셨던 것 같아요. 교수님은 현지 마취과 전문의와 전공의들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였는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현지 의료진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한국의 의료 상황과 일하는 방식이었어요. 우리가 가져간 약품 중에 현지 의료진들이 이름만 들어본 약들이 많이 있으니 약제의 작용과 투약 방법, 용량 등 전부를 궁금해 했어요. 그래서 한국의 의료체계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도 했고요. 수술 시에 특정한 약을 사용하는 이유부터 시작해서 전공의 1년차를 가르칠 때처럼 기본적인 것 하나하나를 다 알려주려 했어요. 저 역시 에티오피아의 의료체계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고요.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한국 의료진이 떠난 뒤에 현지 의료진들이 혼자서도 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거였어요. 그래서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는 게 무엇일지를 계속 생각해보면서 한국에서의 프로토콜을 현지에서 쓰이는 약제와 도구, 방식에 맞춰서 이야기하려고 했죠.

    -같이 일하면서 본 에티오피아 마취과 의료진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요?

    현지 의료진이 가진 지식수준은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높았어요. 만약 그들이 에티오피아가 아닌 다른 환경에 있었다면 훨씬 잘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단지 의료 환경이 좋지 못하고 경험이 없을 뿐이지 공부를 많이 해서 아는 것이 정말 많더라고요. 블랙라이온 병원에서 만난 마취과 전문의 역시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당한 신뢰를 주는 수준이었어요.

    문제는 약제가 충분치 않다는 점이죠. 현지 마취과 의사도 이 점을 지적하더라고요. 외과 전문의의 술기가 어느 정도 높아질 때 까지 마취과 전문의가 뒷받침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약제가 충분히 갖춰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수술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일이 생길 수 있죠. 하지만 어느 정도 외과 전문의의 실력이 향상된 이후에는 자체적으로 잘 굴러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지금도 간단한 심장수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을 갖추고 있어요. 다만, 복합심기형 아이들은 수술 전에도 이미 상태가 좋지 않고, 수술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해야 하는데 수술이 반복되면 아주 사소한 것에도 취약해지거든요. 아직은 그런 상황을 감당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경험이 계속 쌓이면 현지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의료는 인력’이라는 말이 있어요. 사람의 능력이 우선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현지 병원에서 여러 과가 함께 충분히 토론하고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봐요. 사실 우리나라도 그런 환경에서 점차 발전해왔던 거니까요. 약제와 장비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현지 의료진의 의지와 열정이 있다면 복잡한 수술도 충분히 가능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의료봉사가 처음이라고 하셨죠? 에티오피아에 다녀오시고 나서 다시 해외 의료봉사에 나서고 싶은 생각이 드시던가요?

    처음 가는 거라 해외 의료봉사에 대해 동경하는 마음이 컸고, 그만큼 너무 무데뽀로 덤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일주일 동안 체력은 잃었지만 사람들을 얻었어요. 특히 일주일을 같이 보낸 한국 팀으로부터요. 어느 누구하나 주저하거나 방관하는 사람 없이 무슨 일이 있을 때 너도나도 나서는 모습은 솔직히 보기 힘든 풍경이잖아요. 특히나 병원은 자기 영역이 분명하기 때문에 각자 일을 알아서 하는데, 거기서는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커버해주고 있었어요.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지내다보니 동료가 아침에 건네주는 물 한 잔에도 감동을 받게 되더라고요. 이후에도 해외 의료봉사에 참여할 기회가 되고,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함께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