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01-19
    [특강] 쿠바의 일차의료

    [특강] 쿠바의 일차의료

    ‘쿠바’하면 떠오르는 것? 체게바라, 헤밍웨이, 시가와 올드카 정도가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국제보건을 다루는 사람들에게 쿠바의 첫번째 연관검색어는 다름 아닌 ‘일차의료’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의료를 제공하며 국력대비 높은 수준의 일차의료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쿠바의 일차의료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이다. 관심에 이어진 궁금증에 갈증을 풀어보는 특별한 자리가 지난 1월 13일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에 마련되었다. 서울의료원 가정의학과 황서은 선생님의 “쿠바의 일차의료” 에 대한 특강이 그 것이다. 황서은 선생님은 연수 기간 동안 보고 들은 쿠바의 일차의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90분간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아래의 내용은 특강의 강의 내용을 요약정리하여 재구성 한 것입니다)

    overview

    국민의 개인소득(GDP per capita) 52천불의 미국과 6,800불의 쿠바 . 그럼 두 국가중에 인구 1천명당 영유아 사망자수가 더 적은 국가는 어디일까? 큰 고민없이 미국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겠지만 정답은 쿠바이다. WHO에서 작성된 일반 보건현황 보고서(General health statistical profile) 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미국의 1천명당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의 수(Under-five mortality rate (per 1000 live births)는 7명인데 반해 쿠바는 6명으로 보고되었다. 인구 1천명 대비 의사의 수에 있어서도 쿠바는 6.7명으로 (2012, Worldbank) 2명인 한국, 2.7명인 미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status

      이와 같은 결과는 쿠바 정부의 건강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기인하였다고 생각한다. 쿠바에서 건강은 곧 권리이다. 인권으로서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하여 쿠바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상의료 시스템을 운영하며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질병 예방 중심의 일차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참여를 강조한다. 일차의료서비스의 주축이 되는 가정의학/간호 프로그램의 경우, 개인과 가정, 지역사회 환경을 중심으로 포괄적인 접근을 통해 지역주민의 건강상태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실행 과정에서 지역사회에서 곧바로 적용 가능한 구체적인 액션 플랜과 리스트를 제공한다.

    쿠바의의료시스템구조표

      쿠바의 의료시스템(Health system)의 특징은 무상진료, 높은접근성, 포괄적/보편적인 의료서비스, 지역적, 국제의료협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초에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차의료기관 콘술또리오(Consultorio)와 폴리클리니코(Policlinico)가 있다. 하나의 콘술또리오는 반경 1km(도시의 경우)에 거주하는 지역주민 1000-1500명을 맡아 관리하는 일차의료기관이다. 콘술또리오는 동일 지역에 거주하는 의사 1명 간호원 1명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역 주민에 대한 방문진료를 함께 수행하고 있다. 전문인력으로서 의사와 간호사가 협력하여 콘술또리오를 운영하는 것은 기본으로 하며, 의사가 방문 진료등으로 부재한 상황에서는 간호사에 의해 콘술또리오가 운영되기도 한다. 콘술또리오를 방문하는 주민들이 특정 질병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고 스스로 항시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게시판에 관련 자료들을 부착하고 수시로 환자들을 교육하고 있다. 실제로 교육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목적으로 일년에 3~4회 정기적으로 감사가 나온다고 한다. 여러 마을에 분포되어 있는 다수의 콘술또리오를 관장하는 기관은 폴리클리니코이다. 연수 기간동안 방문하였던 폴리클리니코의 경우, 상대적으로 번화하고 높은 인구밀도를 지닌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약 40여개의 콘술또리오를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콘술또리오는 일반적인 진료 업무에 더하여 산부인과, 정신과 등 전문 진료가 가능하며 치과, 재활치료시설, 교육공간(강당, 강의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콘술또리오의 의사들이 돌아가며 당직을 서는 방식으로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consultorio콘술또리오의 외관과 내부 모습

    policlinico_3폴리크리니코의 외관과 내부 모습

      쿠바에서는 일차의료차원의 진료와 관리를 위해 대상 인구를 크게 4개의 그룹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룹의 특성에 따라 반드시 받아야 할 연간 진료횟수를 정해두고 콘술또리오 차원의 관리를 이행하고 있다. 아울러 4개의 그룹과는 별개로 특별히 관리가 필요한 그룹-임산부, 어린이, 노인, 혈액기증자 등-을 설정하여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임산부의 경우, 산모와 아이의 건강뿐만 아니라 그 것이 원하는 임신이었는지, 임신기간 동안 철분제를 섭취중인지 등의 사소한 사항까지 꼼꼼하게 체크하고 관리한다. 임신과 육아에 대하여 산모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상담 및 치료에 관여하며 분만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남편은 정해진 교육을 이수해야한다. 실제로 고혈압문제로 사설 병원에 입원한 임산부 환자를 관리하기 위하여 콘술또리오 의사가 입원한 병원을 방문하고, 해당 병원에서의 의료기록을 리뷰하며 퇴원 후 적절한 후속조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분류기준
    쿠바에서는 종이에 직접 쓰고 기록하는 의료차트가 아직 컴퓨터보다 더 일반적이다. BHT working documents라고 불리는 콘술또리오의 의료차트에는 대상 환자의 질병, 건강상태는 물론 가족력, 거주상태, 거주환경과 같은 다양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거주상태에 대한 정보에 있어서도 단순히 어디에 사는지 주소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주 공간의 구성요소들 – 햇빛이 잘 드는지, 몇 층인지, 지하인지, 몇 명이 같이 사는지 등- 을 꼼꼼하게 확인하여 기록하고 있었다. 지나치게 상세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수도 있다. 하지만 소마비만을 가진 9살 어린이의 비만관리 과정을 보며 이러한 정보들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의사는 아역배우 생활을 하고 있는 어린이가 체중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동기를 부여하고 대화를 통해 아이의 상황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였다. 또한 어린이의 보호자인 할머니에게도 관련 교육을 제공하여 가정에서 보다 세심하게 비만관리가 이행될 수 있도록 도왔다.

    chart 콘술또리오에서 관리되는 지역정보와 환자의 정보를 담은 차트들

      아직 배급경제를 고수하고 있는 쿠바에서 건강 상태에 따른 영양 관리는 환자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부분이 아니다. 따라서 건강 상의 이유로 특정 부분의 영양섭취가 필요할 때, 콘술또리오에서는 별도의 처방전을 발급하여 배급받는 음식을 조정하여 준다. 임신한 여성은 고기나 우유를 더 받을 수 있고 고지혈증환자에게는 일반우유 대신 무지방우유를 지급하게끔 한다. 이 외에도 일차의료시스템 강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감염성 질환관리(Surveillance of epidemic)를 위해 국가차원에서 분야별 전문들가들이 주(week)단위로 정기적인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컨퍼런스 후에는 케이스에 따라 추가로 감별진단을 하거나, 주의가 필요한 케이스의 경우 등록해서 그 집단에 대한 스크리닝 등 질병 감시를 하게 된다. 마을 내부적으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다양한 소셜클럽(Social Club)을 건강캠페인의 거점으로 활용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역구성원 개인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개인적으로는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독립적인 진료 뿐 아니라 팀으로 활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느꼈다.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보건 현황을 업데이트 하고, 주제별로 토론을 하는 과정이 곧 살아있는 교육이 되어 의료 인력들의 질적 수준을 제고,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들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한 곳에서 19년째 근무하며 해당 지역에 대한 대소사를 다 알고 있는 콘술또리오의 의사 술레마씨는 그 자신이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지역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환자이자 자신의 이웃인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정성껏 돌본다는 느낌이 그의 진료를 보는 내내 강하게 느껴졌다.

    docs콘술또리오에서 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는  모습 (상)  정기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 (하)

      길지 않은 연수기간이었으나, 직접 눈으로 지켜본 쿠바의 일차의료시스템과 현장은 책에서 배운 전형적인 훌륭한 일차의료시스템이 실제로 구현된 듯한 느낌이었다. 미국과의 외교적 관계가 완화되면서 쿠바에도 개방의 물결이 몰아치고 있다. 정확하게는 쿠바가 개방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봉쇄를 풀었다는게 맞을 것 같다. 현재 모두가 가난한 쿠바에서는 사명감을 가진 의사는 존경 받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확산으로 소위 ‘돈 맛’을 알게 된 의사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낮아지게 되면, 해외로 망명하게 되는 의사들이 더 많아지거나, 지속적인 의료 인력을 양성하지 못할 수 있을 거라는 걱정이 앞선다. 정부 주도형 의료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는 걱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차치하더라도 인권으로서 국민의 건강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건강권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 그 시스템하에서 의사가 환자를 보는 경건한 태도에는 여전히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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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ㅣ 류인선
    감수 ㅣ 황서은